경주 법흥왕릉(사적 제176호)

여행·탐방 / 울산종합일보 / 2020-07-06 09:37:50
울산종합일보/신문-홍성조의 역사·문화이야기 66

▲ 신라 제23대 법흥왕(514~540)은 불교를 공인, 받아들였고 신라를 중앙집권적 체제로 완성시키며 신라의 융성에 크게 공헌했다. 본지 홍성조 대표이사가 취재차 경주 법흥왕릉을 방문했다.
경주시 효현동 산63번지 법흥왕릉(514~540)이 자리하고 있는데 법흥왕은 신라를 중앙집권적 체제로 완성시키며 발전에 크게 공헌했고 율령을 반포, 불교를 공인하고 받아들였다.

또 금관가야가 항복, 가야계 왕족을 진골로 편입시켜 훗날 김무력-김서현-김유신으로 이어지는 첫 시발점인 시기였다.

법흥왕릉은 경주의 선도산 서쪽 기슭에서 뻗은 낮은 구릉의 소나무 숲속에 자리 잡고 있다.

원형봉토분으로 높이 2미터, 지름 14미터의 왕릉으로서는 비교적 작은편에 속한다.

봉분의 표면이나 주변에 아무런 장식물이 없으며 봉분주위에는 무덤의 둘레돌을 받쳤던 자연석이 드문드문 드러나 있다.

▲ 경주 효현동 3층석탑(보물 제67호)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3층석탑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이중기단위에 세웠다. 기단의 기둥 새김이 면마다 아래위 세개씩이며 지붕돌의 층급받침이 4단인 점으로 보아 9세기 것으로 추정한다. 동경잡기를 비롯해 기록에는 이곳을 애공사지라고 전한다.
주변에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능의 남쪽에는 애공사터라고 전하는 옛 절터에 3층석탑이 한 기 있다.

법흥왕의 능이 삼국사기에 애공사 북봉, 삼국사기에서는 애공사 북쪽에 있다고 하는데 같은자리를 이야기한 것으로 보인다.

현 법흥왕릉은 인근에 있는 효현동 삼층석탑을 애공사탑으로 보고, 그 북쪽에 있는 고분을 법흥왕릉으로 인정한 결과이다.

글 정리 : 울산종합일보/신문 홍성조 발행인, 대표이사
사진 : 최상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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