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화되는 미·중 무역분쟁에 속타는 산업계…'시계 제로'

경제 / 연합뉴스 / 2020-05-22 17:29:31
미 '경제번영 네트워크' 동참시 '사드 악몽 재현' 우려
반도체·석유화학 등 파장 예의주시…산업계 "정부 대응방안 수립해야"
▲ 트럼프와 폼페이오 중국 맹비난 (PG)
미국이 우방국들로 산업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경제번영 네트워크(EPN·Economic Prosperity Network)에 한국의 참여를 압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국내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후유증이 기업의 경영을 짓누르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요구까지 거세지면 자칫 우리나라 기업들의 글로벌 경영 전략에도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미국 못지않게 중국과의 관계도 중요한 국내 기업은 말 그대로 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여서 어느 편도 들지 못한 채 속앓이를 하고 있다.

◇ 반도체 미국 공급망 재편 예의주시…자동차·배터리도 '상황 지켜보자'

산업계는 미국의 이번 조치가 핵심 시장 가운데 하나인 중국에 대한 수출 감소나 미국 투자 압박 등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미국의 압박에 응할 경우 자칫 2017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로 중국의 유통·관광 산업에 대한 보복이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사드의 보복이 유통·관광에 그쳤다면 이번에는 반도체·자동차·철강 등 제조업 전반을 겨냥해 파장이 더 클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22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수출액 가운데 대중국 수출 비중은 25.1%에 이른다.

품목별 대중국 수출 비중은 반도체가 39.7%에 이르고 평판 디스플레이 및 센서는 44.4%다. 석유제품도 18.7%였다.

반도체의 경우 이미 미국이 중국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시작한 가운데 미국의 추가 조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등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은 메모리 제품을 주력으로 하고 있어 일단 화웨이 제재로 인한 직접 타격은 피했다.

하지만 중국 기업의 제품 생산량이 감소하면 메모리 반도체 수요 또한 줄어들기 때문에 매출이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는 글로벌 생산기지가 몰려 있어 세계 반도체 수요의 약 50∼60%를 차지하고 있다"며 "공급망 탈(脫)중국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공급망 재편 움직임도 관건이다. 미국이 반도체 자급률을 높이겠다고 선언하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미국 현지 투자 부담도 커진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오스틴에 공장을 두고 있는데, 대만 TSMC가 미국 투자를 발표함에 따라 최근 증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기회가 되고 수요 또한 대체가 가능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현대기아차 등 완성차 업계는 북미 시장에 판매하는 자동차의 대부분을 미국 앨라배마주와 조지아주 또는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하기 때문에 이번 미중 분쟁으로 큰 영향을 받지는 않는 편이다.

다만 미중 무역갈등이 격화돼 경제 전반에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양대 강국의 갈등으로 소비심리 위축, 환율 불안 등의 파장이 생기면 완성차 업체들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완성차보다는 미국이 무역장벽을 높일 것으로 예상되는 부품 분야에 대한 우려가 크다.

자동차 배터리 업계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자동차 특성상 전기차 배터리는 5년 이상 장기 계약을 맺어 당장 단기적인 영향은 없겠지만 중국이 자국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할 경우 외국 업체에 대한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 "작년도 힘들었는데…" 석유화학·철강 업계 비상

중국 의존도가 높은 석유화학·철강 업계도 비상이다. 국내 화학업계의 중국 수출 비중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이번 무역 분쟁이 수출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서다.

중국의 대미 수출 감소는 중국의 석유화학제품 수요 감소로 이어져 한국 업체의 수출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석유화학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실제로 작년부터 미·중 무역 분쟁으로 철강과 함께 석유화학이 큰 어려움을 겪었다"며 "또다시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항공업계도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 조치로 관광 수요가 급감해 큰 타격을 입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우려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사드 보복 조치 당시 중국 매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아시아나항공[020560]을 비롯한 대다수 항공사는 중국 노선을 상당수 축소하고 동남아 등으로 노선을 돌려야 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사드 당시 중국 정부가 부정기편 운항이나 비자 발급 등에 암묵적으로 제동을 거는 등 사실상 업무가 마비되는 수준이었다"며 "사드로 인한 보복 조치도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는데 또다시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나라가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코로나19로 항공업계가 초유의 위기 사태를 겪는 상황에서 미·중 갈등으로 인한 국제정치적 위기는 항공업계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며 "중국의 사드 보복 같은 사례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의 외교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작년 미·중 무역 분쟁으로 물동량이 감소하며 어려움을 겪은 해운업계도 우려 섞인 시선으로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 미·중, 화웨이 놓고 2차전…삼성·SK도 '촉각' (CG)
해운업계 관계자는 "미·중 무역 분쟁이 본격화하면 해운 물동량 감소가 불가피하다"며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에서 또다시 세계 경제권을 뒤흔드는 악재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 정부 대안 마련 검토…산업계 "상황별 세심한 관리 필요"

정부는 일단 미국의 EPN 구상을 아직 검토 단계로 보고 주시하는 상황이다.

다만 미국이 언제라도 한국 등 동맹국을 상대로 구체적인 요청을 할 수 있어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는 동향을 주시하면서 국내 산업계 등에 미칠 영향을 파악 중이다.

정부는 미국의 요청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사안들을 선별해 대응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아직 EPN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없다"면서 "이미 밝힌 대로 포스트 코로나 이후 글로벌 공급망(GVC) 변화에 대비해 GVC 재편 대책을 6월 말까지 마련하는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산업계는 이번 미중 무역분쟁과 관련해 정부 차원의 세심한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번 미중 갈등이 11월 미국 대선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아 상황이 장기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엎친 데 덮친 격"이라며 "최대 교역국인 미국과 중국간의 무역갈등이 심화하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전반적으로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관계자는 "한국과 비슷한 입장에 처한 다른 나라들도 미·중 간 양자택일을 하기보다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우리 정부도 기업들이 경영 활동을 하는데 위협이 되지 않게 상황별로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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