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찍 철든 9살의 위로 “엄마, 우리 열심히 살자”

울종행사 / 신섬미 / 2016-12-21 09:36:15
사랑愛울산-남편과 이혼 후 한부모 가정으로 지내는 연주 씨 가족
▲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9살 지원이는 엄마바라기다.

초등학교 2학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똑똑하고 마음 넓은 아이였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떻게 아이의 눈에 맞춰 질문을 해야 할까 했던 고민이 무색해질 정도로 지원이는 야무지고 똑부러졌다. “엄마가 눈물을 흘리면 마음이 아파요. 저는.. 그냥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큰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쏟아내는 말들은 기자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그러다가도 금세 “크리스마스에는 인형놀이, 음.. 그리고 화장품 세트가 갖고 싶어요! 산타할아버지~ 선물 주세요”하고 외치는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또래 어린이였다. 이제 10년 남짓 살아온 이 아이에게,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이 아이에게,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무엇보다 따뜻하고 좋은 세상을 선물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무능력·시집살이에 힘겨운 나날들
하늘이 내려준 귀한 선물, 늦둥이 첫 딸
이혼과 남편의 재혼, 힘겨운 모녀의 생활
내리사랑보다 더 애틋하고 감동적인 치사랑


사랑만 믿고 시작한 늦은 결혼, 하지만..
갑작스레 부쩍 추워진 날씨, 오전 시간이라 더 매서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서둘러 걸음걸이를 재촉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 집 앞으로 마중 나온 연주(52)씨는 많이 지친 모습이었다. 지난 세월 겪어온 많은 상처들에 아직 마음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듯 보였다.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눈물을 쏟아냈다.


▲ 모진 시집살이에도 꿋꿋이 버텨온 연주 씨.

사랑했기에 없는 살림이라도 극복하며 살 수 있을 거라 믿고 시작한 늦은 결혼생활이었다. 가진 것은 없었지만 젊은 나이니 서로 의지하면서 차근차근 살아가자 약속했다. 하지만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1년간 연애를 거쳤지만 남편의 무능력함을 알게 된 건 결혼을 하고 나서 오래지 않아서였다. “남편은 경제적인 부분에서 힘이 돼 주지 못했어요. 연애할 때는 몰랐어요 게으른 지. 결혼을 하고 나서 조금씩 알게 됐죠” 무엇보다 연주 씨를 절망스럽게 했던 것은 아이를 가지지 못한다는 이유로 서스럼 없는 폭언과 폭행, 납득되지 않는 행동을 보여주는 시어머니였다. “결혼하고 수 년이 지나도 남편의 속옷은 꼭 시어머니가 챙겼어요. 신혼부부의 방문을 노크 없이 벌컥 여는 건 기본이고, 둘이서 영화를 보러 가도 사이에 꼭 끼여 같이 갔어요” 시어머니는 아들을 뺏겨 심술난 것 마냥 거침없이 질투를 표현했다. 이 때문에 여러 번 이혼 위기도 찾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꿋꿋이 견뎌냈다. 대출을 받아 생활비를 연명해갔고 그래도 시어머니에게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며 시험관 아기도 시도했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에도 결혼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결국 아기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쫓겨나듯 분가를 해야 했다.


▲ 하늘이 주신 귀한 선물, 늦둥이 지원이.

이혼가정 대물림 막고 싶었지만...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신 걸까. 열심히 사는 연주 씨에게 하늘이 선물을 주신 걸까. 시험관 아기를 시도해도 힘들었던 임신이었건만 분가를 한 후 천사 같은 지원이가 부부에게 찾아온 것이다. 늦은 나이에 생긴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욕심이 지나쳐서일까, 남편은 다니던 일을 그만두고 다단계에 빠졌다. 지원이가 3살 때였다. 카드빚이 불어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말도 제대로 못했던 아기였지만 지원이는 잦은 다툼에 엄마와 아빠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나 보다. “다투고 난 후 울고 있으면 지원이가 노래를 틀고 앞에서 제가 좋아하는 춤을 췄어요. 엄마를 웃게 해주려고, 그 때마다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부부의 지속적인 다툼이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이혼만은 할 수 없었다. 연주 씨가 이혼가정에서 자랐기에 그 환경을 대물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1년이 넘게 일을 하지 않았고 연주 씨는 카드영업, 정수기, 입주청소 등을 하면서 닥치는 대로 돈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들이 아직 어린 지원이를 혼자 둬야해 오래 할 수 없었다.


여러모로 힘든 시기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의지하던 친정엄마마저 병마로 떠나보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그런 상황에서 남편은 갑작스레 이혼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밤만 되면 여기가(가슴이) 꽉 막혀서 너무 아파요. 주먹으로 내리 치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남편은 끈질겼다. 결국 지원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지난해, 합의 이혼을 하게 됐다.


▲ 지원이는 아빠, 엄마 이야기에 금세 눈물을 쏟아냈다.

이혼 후 지원이와 살 집을 구해야했다. “단칸방이라도 지원이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지원이 밖에 없었어요. 지원이만 보고 독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하지만 양육비도, 생활비도 끊긴 막막한 상황만 이어졌고 두 모녀에게는 빚만 늘어 갔다. “평생 빚이란 걸 지고 살아본 적이 없는데 혹시나 지원이에게 피해가 갈까봐 늘 불안했어요” 결국 연주 씨가 선택한 것은 개인 파산 신청이었다. 아직 젊은 나이지만 온 몸이 성한 데가 없어 제대로 된 직장도 다니지 못하고 있는 연주 씨였다. 아파도 병원비가 없어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다달이 내야하는 집세 걱정에도 마음이 빠듯한데 앞으로 커가는 지원이의 교육을 감당해야하는 현실이 부담스럽다. 이런 상황에 뒤늦게 안 사실은 이혼을 요구했던 남편에게 새로운 여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혼 후 남편은 재혼을 했고 현재 양육비도 전혀 보태주지 않고 있다. 일주일에 두, 세 번 나가는 입주 청소 일로 두 모녀가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다.


▲ 지원이는 또래아이들과 달리 배려심 많고 영특하다.

“크면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
지원이는 자꾸 아빠를 찾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아빠가 집에 들렀지만 왜 자고 가지 않는 지 궁금해 했다. 지원이가 사춘기를 겪기 전에 아빠의 재혼 사실을 알리는 것이 낫다는 조언을 듣고 얼마 전 연주 씨는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어..” 초등학교 2학년 나이에 이해하기 힘들고, 받아들이기 버거운 사실이지만 마냥 숨길 수 만은 없었다. 지원이는 믿지 못하는 듯 아빠를 집으로 불렀다. “아빠, 우리 나가서 얘기하자” 엄마가 있는 자리에서 하지 못할 말이 있을 수도 있다며 차가운 날씨에 아빠 손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지원이는 2시간이 넘도록 들어오지 않았다. 걱정이 된 연주 씨는 전화를 걸었다. “아빠랑 아줌마가 살고 있는 집에 갔다 오는 길이야” 이제 9살인 아이는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온 것이다. 집으로 돌아 온 지원이는 충격을 받았는지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고 했다. 연주 씨는 “지원아, 엄마와 아빠는 헤어졌지만 아빠는 영원한 지원이 아빠고, 엄마는 영원한 지원이 엄마야. 달라지는 건 없어”라고 이해시키려 했다. 그 작은 몸에서 더 이상 나올 눈물도 없을 때 쯤 지원이는 울음을 그치고 밥을 달라고 했다. 밥 한 그릇을 비우고 난 지원이는 엄마에게 다가가 등을 토닥이며 “엄마 우리 열심히 살자”고 했다. 연주 씨는 내 딸이지만 당황스러울 정도로 기특하고 영특하다고 했다.


아빠는 미안하다는 그 뻔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지원이는 아빠를 보지 않고 있다. 연락도 하지 않는다. 엄마를 울게 만드는 아빠가 밉다고 했다. “엄마가 저 보고 산다고 해서 아빠가 참 미워요. 엄마는 힘들게 혼자서 나를 키우고 있는데 아빠는 우리집보다 훨씬 넓은 집에서 아줌마랑 오빠랑 살아요. 그걸 보니까 너무 속상했어요. 제가 아빠 딸인데.. ” 지원이는 애써 참으려 했지만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지원이의 눈과 코가 빨갛게 변해갔다. 질문을 해야 하는 역할이지만 아이의 눈물을 마주하니 아픈 곳을 들춘 미안함에 숨고 싶어졌다. 모든 상황을 다 받아들인 아이는 이제 용돈 달라는 소리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가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효녀도 이런 효녀가 어디 있을까, 9살의 작은 아이는 속상하고 가슴 아플 때 마다 머리 속에 다른 생각을 하며 버틴다고 했다.


▲ 서로가 살아가는 원동력이자 버팀목인 모녀.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속담이 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하기는 해도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사랑하기는 좀처럼 어렵다는 뜻이다. 보통 부모와 자식 관계를 두고 내리사랑이라 말하지만 연주 씨와 지원이를 만나고 나서는 치사랑이 얼마나 애틋한지 알게 됐다. “엄마는 마음에 상처가 있으니 제가 어루만져 주고 싶어요. 어른이 되면 엄마를 행복하게 해줄 거예요. 제가 가장 행복했을 때는 엄마가 웃을 때고, 가장 슬플 때는 엄마가 울 때예요” 엄마랑 단 둘이서 여행 가는 것이 꿈인 지원이. 서로가 살아가는 원동력이자 버티는 힘인 모녀에게 앞으로 눈물 보다 웃음이 많은 날들이 찾아오길 바란다.

글=신섬미 기자
사진=조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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