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내물왕릉(사적 제188호)

여행·탐방 / 울산종합일보 / 2021-08-30 10: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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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종합일보/신문-홍성조의 역사·문화이야기 111
▲ 위 내물왕릉(356~402)은 신라 첫 김 씨왕이었던 미추왕의 조카이다. 흘해이사금(310~356)이 아들 없이 세상을 뜨자 내물왕이 그뒤를 이었고 이로부터 52대 효공왕까지 김 씨가 신라의 왕위를 이었다. 본지 홍성조 대표이사가 내물왕릉을 가리키고 있다.
신라 제17대 내물왕(356~402)은 첫 김 씨왕이었던 미추왕의 조카이다.


석 씨인 흘해왕이 아들 없이 세상을 뜨자 내물왕이 그 뒤를 이었고 이로부터 52대 효공왕까지 김 씨가 신라의 왕위를 이었다.

내물왕릉은 경주 계림의 경내에 있으며 첨성대에서도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또 월성으로 부터 서북쪽 220미터 떨어져있으며 삼국유사에서도 첨성대 서남쪽에 있다는 기록과 일치 한다고 전한다.

내물왕릉은 밑지름 22미터 높이 5.3미터의 규모이며 흙을 올려 만든 원형 봉토형이다. 봉분 밑둘레에 자연석이 드문드문 돌아가며 보이고 있어 둘레돌을 돌렸음을 알 수 있다.


왕릉의 내부는 나무로 만든 덧널 위에 냇돌을 올려쌓아 만든 돌무지덧널무덤의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되고 있다. 

 

▲ 삼국유사 에서는 첨성대 서남쪽에 내물왕을 장사지냈고 능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내물왕릉 사진 뒤편에 현재 첨성대가 있어 기록과 일치한다

내물왕은 김 씨성의 두 번째 독점적 왕위계승을 이루는데 일조하였고 마립간이란 왕명칭을 사용하였다.

중국과 외교관계를 원활히 펼쳤으며 선진문물을 도입하는 등 국력성장의 비약적 발전을 꾀한 시기 이기도하다. 백제와 왜의 연합세력의 침입이 있자 고구려 광개토대왕에게 도움을 요청 위기를 모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내물왕은 국가전반의 기반을 다진 왕으로 짐작할 수 있다.

 

글 정리: 울산종합일보/신문 홍성조 발행인, 대표이사
사진: 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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