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향교

여행·탐방 / 울산종합일보 / 2021-09-14 13:2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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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종합일보/신문-홍성조의 역사·문화이야기 113


▲ 경주향교는 전통과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으로 전통민족문화를 이해하고 계승하는데 소중한 보물로 관리되고 있다. 본지 홍성조 대표이사가 경주향교 이상락 사무국장에게 경주향교의 주요사업과 전통민속체험 프로그램등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있다.
경주향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1호며 신라 신문왕 2년(682)에 국학을 세워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며 또 훌륭한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교육기관이다.

오늘날까지 1340여 년간 유학을 진작하고 인재를 육성하며 지방교육의 중심지로 이어왔다.

고려시대에는 성종6년(987)에 지방교육기관인 학원을 설치하고 11년(992)에 시설을 정비했다.

조선시대에는 향교로 이어졌는데 성종23년(1492)에 문묘와 성균관의 배치형식을 따라 다시 지은현재와 같은 건물배치는 향교의 표본이 됐다.



▲ 경주향교의 주요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동무, 서무, 동재, 서재, 존경각, 예절관, 생활관, 전사청, 전교실, 외삼문, 내삼문, 관리사 등이 있다.
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선조33년(1600)에 대성전을 비롯해 제사를 올리는 제향공간을 다시 지었고 광해군6년(1614)에 명륜당등과 같은 학문을 닦는 강학공간을 고쳐지었다.

광복 후에는 임시학교로 활용됐으며 1999년부터 사회교육원이 개설돼 강학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건물의 앞쪽에 있는 대성전과 동무‧서무는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뒤쪽에는 강당인 명륜당과 학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던 시설인 동재‧서재가 있다.

▲ 경주향교 우물은 경주향교 전사청과 관리사 사이에 있으며, 이 우물은 향교가 세워지기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쪽 지름이 80센치, 깊이 5.8미터 가량으로 신라시대 우물가운데 분황사 우물에 버금가는 큰 규모이다. 다듬은 돌을 둥글게 쌓아 올린 위에 네모난 화강석을 맞대어 덮개돌을 올린 위에 네모난 화강석을 맞대어 덮개돌을 놓았고 사방으로 배수구를 두었다. 삼국유사에의하면 원효대사와 요석공주가 인연을 맺어 설총을 낳은 요석궁이 바로 이곳이며, 이 우물은 요석궁의 우물로서 여기에서 태어난 설총이 이 우물 물을 마시고 대학자가 되었다해 총명수라고 부른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본 향교는 영남에서 규모가 가장 크며 서울 문묘와 같이 다수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향교의 주요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동무, 서무, 동재, 서재, 존경각, 예절관, 생활관, 전사청, 전교실, 외삼문, 내삼문, 관리사 등이 있다.

글 정리: 울산종합일보/신문 홍성조 발행인, 대표이사

사진: 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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